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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얘기가 아직은 어린 백희(함은정) 양에게 상처가 될지도 몰라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 작곡 수업에서 좋은 점수를 받고자 남의 곡을 훔치기까지 하는 걸 보고는 그러다 크게 일을 그르치지 싶어 말을 꺼내기로 마음먹었어요. 사실 백희 양은 제가 좋아하는, 가까이 하고 싶은 캐릭터가 아닙니다. 좀 더 솔직해 보자면 저만이 아니라 대개들 백희 양 같은 타입을 불편하게 여길 걸요? 야심이 엿보이고 그래서 뭔가 꿍꿍이가 있을 것 같은 인물은 왠지 사람을 긴장시키기 마련이거든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백희 양도 떠오르는 사람이 한 둘쯤은 있을 겁니다. 재능도 확실히 있고 자신의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도 충분히 알겠는데 그다지 호감이 가지 않는 인물들이 가끔 있잖아요, 왜?
백희 양, 노력과 독기는 다르답니다
백희 양이 남의 곡을 훔치기까지 하는 걸 보고는 덜컥 걱정이 앞서지 뭡니까. |
지금쯤 딴에는 죽을힘을 다해 노력을 해왔건만 왜 가수의 꿈도 야망도 없었던 고혜미(수지)가 내 일도, 사랑도 모두 가로채는 것이냐 한탄 중일 테지만 원인을 찾을 생각은 않고 그저 남 탓만 하는 백희 양이 저는 참으로 답답합니다. 무엇보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법을 알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더군요. ‘혜미빠’ 소리를 들을 정도로 혜미 곁을 맴돌았지만 친구의 속 사정을 알지 못해 진정한 우정을 얻는 데에 실패했고, 마음을 준 진국(옥택연)이 역시 혜미만을 바라볼 뿐이죠. 또한 뼈를 깎는 노력 끝에 데뷔할 기회를 얻었으나 대중에게 별 관심을 못 받는 처지이기도 하고요. 대중인 제 입장에서 보자면, 빼어난 재능과 피나는 노력이 스타의 필수 조건이지만 독기어린 에너지가 느껴질 때는 매력이 반감되어버리는 게 사실이랍니다. 스스로 즐기는 춤과 노래로 느껴지는 게 아니라 반하라고 강요하는 무대로 느껴지기 십상이거든요.
독기가 거북하다는 제 말에 순간 고개를 갸우뚱거릴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필숙(아이유)이는? 200일 안에 30킬로를 감량했다면 누구보다 독한 아이일진데 왜 다들 필숙이에게는 너그러운 시선인지, 그게 의문스럽죠? 그건 죽음의 다이어트를 해낸 필숙이지만 독하기보다는 사랑스럽게 다가오기 때문일 거예요. 필숙이의 노력은 자신에게만 국한된 일이지 누군가에게 해를 끼칠 것처럼은 느껴지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매사 지금처럼 노력은 하되 힘을 좀 빼보라는 당부를 하고 싶은 거랍니다. 물론 백희 양이 왜 그토록 성공에 집착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에요. 지난 날 혜미가 퍼부었던 모욕들, 저 역시 낱낱이 기억하고 있는 걸요. “얜 저 따라온 애일뿐이라고요. 전 일류고 얜 삼류라고요!”라던 외침, 지금도 귀에 쟁쟁합니다. 단순히 좋아하는 친구가 아니라 빛나는 스타와 같은 존재였던 혜미가 잔인하게 진심을 짓밟았던 걸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성공이나 인기보다 사람을 먼저 생각해주세요
그런데 말이죠. 모든 걸 다 갖고 있는 줄만 알았던 혜미는 실은 누구보다 딱한 처지였습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씨에게 인정받았는가 하면 줄리아드 음대 입학까지 결정된 상태였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어린 동생과 단 둘이 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고 말았죠. 꿈이 막 이루어지려는 찰라 운명에 발목을 잡힌 꼴이니 그 심정이 오죽했겠어요. 헌데 엎친 데 덮친다고 사채업자의 종용으로 딴따라니 뭐니 해가며 경멸해마지 않았던 기린예고 오디션에 응시했다가 낙방하고 만 겁니다. 깜냥이 안 된다고 여겼던 ‘혜미빠’ 윤백희는 당당히 합격했는데 말이죠. 백희 양에게는 꿈의 실현이었던 기린예고 합격이 혜미에겐 생존의 문제였거든요. 그래서 정하명(배용준) 이사장 앞에서 살려 달라며 무릎을 꿇기도 했던 거고요. 그러나 혜미는 다행히 강오혁(엄기준) 선생님과 삼동(김수현), 진국이와의 얽히고설킨 인연을 통해 조금씩 달라져가고 있습니다. 고마움이 무엇인지, 배려가 무엇인지, 꿈을 향한 열정과 도전이 얼마나 보람 있는 것인지 깨달아 가고 있어요. 이기적이던 혜미가 삼동이와 진국이가 처한 가슴 아픈 현실 앞에 슬픔을 나눌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편견이라는 치명적인 결함으로 인해 입학 오디션에서 탈락했던 혜미 곁에는 이제 부족했던 부분을 채워주고 가르쳐주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는 거죠. 백희 양이 부러워해야 할 건 성공이나 인기가 아니라 바로 함께 할 ‘사람’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세요.
칭찬과 아부로 가식적인 인연을 맺으려 들 게 아니라, 표절 같은 그릇된 방법으로 성공에 다가가려 할 게 아니라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실은 처음엔 강오혁 선생님께 편지를 쓰려고 했어요. 혜미나 삼동이나 진국이 못지않게 올바른 스승이 필요한 학생이 백희 양이어서요. 친구보다는 라이벌이 더 중요하다며 경쟁을 부추기는 스승이 아닌, 남다른 매력을 찾아내주고 맞춤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인간미 넘치는 스승 말이에요. 허나 강오혁 선생님이 손을 내민다 한들 백희 양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말짱 도루묵이겠기에 백희 양에게 먼저 편지를 쓰는 겁니다. 잘 생각해보세요. 어쩐지 강오혁 선생님과의 인연이 백희 양의 인생에 ‘Break Shot’이 될 것 같지 않나요? 그래미상을 수상한 가수 K에게 스승 정하명 이사장이 ‘Break Shot’이었듯이.
10 아시아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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