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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효진│“내가 연기해 놓고도 현욱을 구워삶는 게 여우더라” -2

최종수정 2011.03.02 11:34 기사입력2011.03.02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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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LOGO#> 환경문제를 고민하면 나 이외의 존재들도 나와 똑같이 귀하고, 내가 지구상에서 그렇게 대단하거나 뭔가를 함부로 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지 않나. 그런데 배우는 촬영장에서 자기가 중심이 되고 자기 주장을 내세워야 할 때도 있다. 그런 게 부딪치지는 않나.
공효진
: 사실 그런 부분이 있다. 배우가 자기 주장이 강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현장에서 조금 궁상맞아 보이고 약간 모양 빠질 때도 있다. (웃음) 거침없이 행동하는 게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그러면 주변 사람들이 “저 사람은 뭐 저렇게 무서운 게 없어서 저럴까? 역시 대단한가보다” 그러기도 한다. 사실 내가 지향하는 배우의 모습도 그랬다. (웃음) 멋있게 앉아서 “커피 한 잔 주세요” 하고, 그 커피 남기고 가고. 하하. 그런데 실제의 나는 사실 그런 사람이 아닌 거다. 그런데 연기를 할 때는 어떻게든 남들에게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게 너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내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업을 가졌고, 소비지향적일 것 같지만 실제의 나는 십분 안에 샤워하고 수건 말려서 다시 쓰는 사람인데 그걸 지금까지 왜 보여주지 않았나 싶었다.

“배우는 많은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10LOGO#> 자신의 실제 모습과 동경하는 모습의 차이가 컸나 보다.
공효진
: 사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람들에게 좀 더 와일드한 모습으로 비춰지길 바랐다. 학교에 꼭 그런 애들 있지 않나. 반장보다 일진을 멋있다고 생각하는 애들. 침 뱉고, 껌 씹고 손으로 밀어도 될 거 발로 툭 치고 지나가고 하는 모습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하고. (웃음)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지금이야 그 콩깍지가 벗겨지긴 했지만 (웃음) 그래도 좀 더 거침없어 보이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환경을 생각하고, 생활에 꼼꼼해지는 게 나 스스로도 멋진 모습으로 느껴졌다. 나 아닌 다른 것들을 생각하는 진지한 태도가 타인에게도 멋있게 비춰질 수 있는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

<#10LOGO#> 그런 태도가 연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나. 최근작들, 특히 <파스타>에서 당신과 이선균은 자신들의 역할을 넘치지 않게 정확하게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드러나기 보다는 상대방이나 주방이라는 공간의 전체적인 조화에 신경 쓰는 것 같았다.
공효진
: 우선 이런 문제에 관심이 생기면 소비를 함부로 하는 역할을 하기 쉽지 않다. 이것저것 막 사는 부잣집 딸을 연기하는 게 지금의 나와 맞지 않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물론 좋은 작품이라면 하겠지만 (웃음) 그리고 나는 배우가 많은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작품마다 5, 60명에서 많게는 100명이 넘는 스태프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일이다. 그 중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과 얘기도 하고 내 편으로 만들고, 서로의 감성을 전달해야 제대로 일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까 인간관계나 작품의 조화에 대해 노력했고, 그런 면에서 약간 장점이 있는 것 같다.

<#10LOGO#> 타인과의 관계나 타인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굉장히 많이 생각하는 성격 같다.
공효진
: 어렸을 때 인기인이거나 하지 않았고, 친구들과 잘 지내려고 노력하는 쪽이었다. (웃음) 눈치도 잘 보고 분위기 파악도 잘 하는 애. 통솔력 있게 애들을 리드하거나 중심에 서는 스타일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잘 하려고 노력했었고.

<#10LOGO#> 그래서 배역도 남을 챙겨주고 보살피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심지어 <파스타>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현욱이 유경에게 많은 걸 의지한다. 유경에게 징징거리기도 하고.
공효진
: 그렇게 됐다. (웃음) 어느 날 보니 내 손 안에서 쉪(현욱)이 놀고 있는 거다. (웃음) <파스타> 찍다가 방송되는 걸 스태프들이랑 같이 보는데 나한테 “서유경 진짜 여우다. 와, 여우, 여우~” 이러더라. (웃음) 내가 연기해 놓고도 표정으로 현욱을 구워삶는 게 여우더라.

<#10LOGO#> 현욱은 상당한 원칙주의자고, 유경은 그에게 기분상하지 않게 여러 조언을 해준다. 이런 부분을 자연스럽게 끌고 가려면 스스로 디테일을 만들어가는 부분이 많았을 것 같다.
공효진
: 처음에 감독님은 나에게 <건빵 선생과 별사탕>처럼 “그동안 뭘 해도 잘 안 됐지만 이번 일은 끝장을 봐야겠어”라는 투지에 불타는 캐릭터를 원하셨다. 그래서 원래 내 첫 등장 신은 래퍼처럼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 이 노래를 부른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만큼 남자 같은 성격에 현욱이 아무리 날 괴롭혀도 끝까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 뚝심이 보이는 여자애였다.

<#10LOGO#> 결과적으로 유경은 굉장히 여성적인 매력이 있는 모습으로 나오지 않았나.
공효진
: <미쓰 홍당무> 이후에 나는 진짜 어디서 살고 있는 여자애 같은 캐릭터를 하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파스타>도 배역에 큰 디테일이 가미되지 않은 담백한 시나리오라 내가 그런 모습을 만들어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감독님과 첫 미팅을 하고 작가님이 유경의 캐릭터에 디테일을 넣었는데 그게 전부 왈가닥 느낌이었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이번만큼은 여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라고 말씀드렸고, 그런 디테일들을 차라리 빼주시면 스스로 만들어가보겠다고 했다. 또 사람들이 보는 내 이미지대로 와일드하거나 억척스런 여성의 모습만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에는 작품 속에서 정말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



<#10LOGO#> 그게 유경의 독특한 점이었던 것 같다. 남성에게 여성적인 매력을 너무 어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일부러 여성적인 매력을 없애지도 않고. 일상의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느낌이 들은 건데,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공효진
: 반복적이지 않은 역할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제작진에게 아예 “제가 이번에는 이렇게 하고 싶습니다”라는 걸 설득하려고 한다. 작품 초반에 이게 나쁜 판단이 아니었다고 어필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고. 촬영 초반에 감독님이 연기에 “맥아리가 없다”고도 하셨다. (웃음) 현욱이 맨날 소리를 지를 텐데 그런 모습으로 어떻게 맞대응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셨으니까. 하지만 그런 모습은 내가 연기할 수 있어도 하지말자고 생각했다. 그건 똑같은 연기의 반복이니까. 현욱이 무서울 때는 눈물 찔끔 나게 무서워하고, 모자란 모습을 보여줄 때는 그냥 모자란 게 많은 보통 여자애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다 1,2회가 나가고 나서 감독님이 그대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10LOGO#> 그런 캐릭터의 디테일을 납득시키려면 이선균과의 호흡도 중요했겠다.
공효진
: 내 캐릭터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절대 내 위주로만 생각하지는 않았다. 내가 너무 약해져야만 남자배우의 감정을 끌어올 수 있을 때 “난 불쌍한 거 싫어요. 궁상맞지 않을래요”라고 버티면 상대방이 연기할 구실이 없어진다. 그 사람은 내가 불쌍하기 때문에 내가 일으킨 문제들을 눈감아줄 수 있는 건데, 내가 그걸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초반에 내 캐릭터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 그동안 익숙한 연기들을 보여주면서 캐릭터를 만들면 식상하고 재미없어진다. 그래서 요즘에는 작품 속에서 정말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다.

<#10LOGO#> 평범한 사람?
공효진
: 세상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고, 다들 각자의 모습으로 산다. 그런데 우리가 연기할 때 과도한 설정을 주거나, 불쌍한 척하고 신파를 보여주면 그 수많은 사람들 각각의 디테일을 표현할 수 없다. 뻔한 설정을 피해서 내 연기에 대한 새로운 룰을 만들고 싶고, 그래야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파스타>는 그런 점에서 감독님, 작가님, 배우들의 시너지가 너무 좋았고. 그 결과로 지금의 유경이가 나온 것 같다.

<#10LOGO#> 유경이가 갑자기 예쁜 모습으로 나온다거나 하지 않고 현욱과 같이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여러 매력을 보여주는 게 인상적이었다.
공효진
: 정말 많이 고민했던 것 중 하나가 유경이가 밉상이 되면 안 된다는 거였다. 조금만 잘못하면 시청자들이 “쟤 뭐야? 맨날 일만 저지르고 남자가 다 처리하게 만들어?” 이럴 수 있는 캐릭터였으니까. 주방에서 온갖 일을 저지르고, 해결 못해서 맨날 울고 있고, 그런데 쉐프가 그걸 봐 주고 그런 식이면 누가 봐도 밉상이다. 그래서 내가 대사가 없을 때도 주방에서는 계속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몸이 말라서 체력도 안 좋아 보이는데 해 보려고 노력하고, 남자들보다 두 배로 움직이면서 한계를 극복하려고 발버둥치는 거다. 그걸 감독님도 화면에 보여주려고 6시간 동안 카메라가 나만 쫓아가면서 내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걸 원테이크로 보여주기도 했다. 저 여자애가 고생하고 있다는 거다.

<#10LOGO#> 그래서 당신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기도 하다. 보통 여배우는 나이 들수록 맡을 수 있는 역할이 한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당신은 점점 자신이 원하는 배역을 찾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공효진
: <파스타> 전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나는 여성들이 멋있게 생각하거나 와일드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분간은 <파스타>에서 나온 것 같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물론 그걸 넘어 또 다른 매력을 부여해야 할 거고. 지금은 여배우들의 전성기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과거보다 시간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냥 좀, 더 잘 해야 될 것 같다. 우연히 좋은 작품 만나서 빵 터뜨려서 배우 생명을 연장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해야한다. 사람들을 매료시키려면 결국 자신의 능력이 필요하다. 그냥 좋은 작품 만나고 좋은 감독님과 일하는 게 다가 아니다. 약간 희망이 없던 작품도 그 사람이 연기해서 좋은 작품이 되고,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함께 하는 사람들이 그 사람의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보는 사람 뿐 아니라 만드는 사람들도 선호하는 배우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래야 오래 할 수 있지 않을까 (웃음)

<#10LOGO#> 30대 이후 배우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살고 싶나.
공효진
: 이미 시작된 것일 수도 있는데, 배우들은 배우로서의 확고한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여성스러울 것 같아”나 “착할 것 같아” 같은 거. 그런데 그런 캐릭터는 캐릭터로 놔두고, 자신으로 돌아왔을 때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게 필요할 것 같다. 배우들은 자신의 이미지가 결정되면 한 가지 모습을 극대화시키려고 노력하게 되고, 자신에게 잘 맞는, 사람들이 제일 호응해주는 모습으로 자신을 끌고 가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실제 모습이 혹시나 드러날까 하는 걱정도 하고. 그래서 평소 이미지와 다른 배역을 연기하면 “저와는 정말 다른 인물이었구요”, “작품 속의 저는 그냥 캐릭터죠”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다. (웃음)

<#10LOGO#> 이제 당신은 안 그럴 건가? (웃음)
공효진
: 사실 나는 패셔니스타라거나, 당당하고 솔직하고 거침없을 것 같다는 이미지가 있다는 걸 안다. 물론 그런 모습으로 비춰지는 걸 바꾸려고 하거나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건 배우로 활동할 때 내 모습이고, 나로 돌아왔을 때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좀 더 세심하기도 하고, 동시에 내 옆에 있는 나무만이 아니라 숲을 좀 볼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고. 그래서 배우로서의 내 이미지를 내 실생활에 가져다 씌우기 보다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지만 속과 겉이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웃음) 겉모습은 배우지만, 내 속은 내가 책에 풀어놓은 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내 모습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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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인터뷰, 글. 강명석 two@
10 아시아 인터뷰. 최지은 five@
10 아시아 사진. 이진혁 eleven@
10 아시아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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