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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LOGO#> 완벽주의자로 이름난 박신양과의 첫 작업은 어땠나?
장항준 : 굉장히 많이 준비하고 몰입하는 배우다. 정말 노력파다. 24시간을 윤지훈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으니까.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계속 문자로 피드백이 오는데, A4지로 치면 한 장을 빽빽하게 채울 만큼 장문의 내용이 하루에 몇 번씩 온다. 정말 이 사람은 재능이 훌륭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진짜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걸 느꼈다.
<#10LOGO#> 윤지훈과 각을 세우는 이명한(전광렬)도 초반에는 그냥 권력지향적인 인물로 보였지만 정병도 원장과의 스토리나 국과수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게 드러나면서 앞의 행동들까지 이해하게 되는 면이 있었다. 이 인물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
장항준 : 처음에 배우들에게 이렇게 비유를 했다. “이명한은 박정희, 윤지훈은 김대중이라고 보자”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박정희란 인물은 사실 매력적인 악인이다. 관동군 출신에 배신도 몇 차례씩 하는 추악한 과거가 있었지만 분명 나라를 발전시키겠다는 열정은 있었던 거 같다. 문제는 그걸 ‘나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모든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 거다. 전광렬 씨에게도 “이명한은 나쁜 놈이다. 대신 이 나쁜 놈에게 이유를 심어주고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어보자”고 했다.
<#10LOGO#> 사실 그에게도 한 때 윤지훈처럼 순수하게 열정 넘치는 시절이 있지 않았나.
김은희 : 어떤 면에선 예전의 이명한이 지금 윤지훈의 모습이다. 국과수를 사랑하고 법의학을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은 같은데 이명한은 현실의 벽을 체감하고 변해간 거다.
장항준 : 극 초반 전광렬 씨에게 “가장 이명한을 닮은 사람은 윤지훈이다. 15년 전 이명한의 모습이 윤지훈이다” 라고 말했고 박신양 씨에게는 “극좌와 극우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다.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는 순간 극좌는 곧바로 극우로 바뀔 수 있으니까. 그래서 원래 윤지훈도 10회쯤에 변하는 걸로 설정되어 있었다. 정병도 원장의 죽음을 보면서 힘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명한과 싸우다가 이명한처럼 되는 거다. 그러면서 윤지훈과 고다경(김아중)이 대립하게 하려 했는데 이미 시청자들 사이에선 윤지훈이 거의 안중근 의사처럼 되어 있었다. 그런 사람을 변하게 만들면 우리는 이민 가야 하는 거다. (웃음) 누군가 ‘윤지훈은 지금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고 하더라. 자기 길만 딱 보고 달려가면서 ‘다 필요 없고 정의면 된다’는, 어떻게 보면 구닥다리 인물인데,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다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그런 면에 사람들이 열광한 것 같다.
김은희 : 드라마라는 게 그렇더라. 어느 순간 우리 손을 떠나더니 살아서 움직이고 스스로 진화한다.
<#10LOGO#> 영화였다면 내가 만들고자 했던 캐릭터를 사람들이 원하는 캐릭터로 바꾸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상업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건가.
장항준 : 그렇다.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드라마의 속성이라는 건 대중성에 절대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 재미들도 나름대로 느꼈다. 피드백이 팍팍팍 오니까, 한 주에 두 개씩 개봉 하는 게 장난이 아닌 거다. (웃음) 수요일에 개봉하면 목요일에 또 개봉하고, 다음 주에 또 개봉하는 게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고 신나면서 위태위태하기도 한 시간이었다.
<#10LOGO#> 극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도 관건이었을 것 같다. 16부에서 20부로 늘리면서 장항준 감독이 연출에서 빠져 대본 작업에 동참하게 되기도 했고.
장항준 : 써놓은 대본이 10회 정도까지였는데 연장이 결정되는 바람에 김은희 작가가 SOS를 쳤다. 우리 대본은 이야기의 틀을 만들고 감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는데 그걸 한 주에 2회씩 쓴다는 건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게다가 이런 장르는 템포가 느려지면 끝이니까 아마 내가 안 갔으면 대본에서 사고가 났을 거다. 그리고 또 하나, 연출자는 잠을 못 잔다는 게 고역이었다. 현장에서 한 시간 반, 두 시간씩 밖에 잠을 못 자니까. 가장 큰 고문이다. 없던 것도 다 불겠더라. (웃음) 결국 연출에서 빠지고 들어와 사흘을 내리 잤다.
<#10LOGO#> 하지만 오랫동안 기획해 온 작품의 연출에서 도중에 빠지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장항준 : <싸인>이 아이라고 치면 내가 아빠고 김은희 작가가 엄마다. 함께 산통 끝에 애를 낳은 건데, 그걸 놓는다는 게 참 안타까웠다. 그리고 끝까지 하면 오로지 장항준의 작품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명예욕 같은 것도 있었지만 결국은 내 판단이 맞았던 것 같다. 김형식 감독한테도 정말 고마운 게, <외과의사 봉달희> 같은 작품으로 이미 일가를 이룬 사람이 남이 하던 걸 중간에 받아서 한다는 거는 쉽지 않았을 거다.
김은희 : 그리고 가장 유쾌한 부검이 될 뻔 했던 신이 있는데, 원래 미군 사건이 다 끝나고 다경이 국과수로 복귀했을 때 지훈과 다경이 부검하는 시신을 장항준 감독으로 하자는 얘기를 했다. 10회를 마지막으로 연출에서 빠지니까 약간 상징적으로, 부검대 위에 오빠가 누워 있으면 다경이 사인을 읽는 거다. “40대 남자. 과로사...” (웃음)
<#10LOGO#> 연출을 하기 전과 지금은 드라마 감독들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겠다.
장항준 : 찍는 동안 친한 영화감독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떻게 좀, 할 만 해?” 묻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하지 마! 우리는 못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돼! 이건 드라마 판에서 10년 이상 조연출 한 사람들이 트레이닝 하고 트레이닝 하고 트레이닝 해서 할 수 있는 시스템이야. 꿈도 꾸지 마! 근처에도 올 생각 하지 마! 나 정도나 되니까 이 정도 하는 거야!” (웃음)
<#10LOGO#> 왠지 잠재적 라이벌을 견제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웃음) 함께 작업한 작가로서, 장항준 감독의 작가로서의 장점은 뭐라고 보나.
김은희 : 따뜻한 시선? 어떤 거든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가 있다. 실제적으로 보면 대사를 잘 쓰는 편이다. 구성은 나에 비해 좀 딸리는 거 같고. (웃음)
장항준 : 동의한다.
<#10LOGO#> 앞으로도 작가로서의 공동 작업이든, 아니면 연출과 작가로든 함께 작업할 생각이 있나.
장항준 : 기본적으로 나는 영화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계속 영화를 할 생각인데, 그 사이 드라마에 적합한 소재가 있으면 같이 구성을 하고 연출을 할 생각이다. 각자 다른 작품을 맡아 하다가 사이클이 한 번 어긋나면 만나기가 굉장히 어렵긴 한데 그게 어찌 됐든 ‘안전빵’이기도 하다. 둘이 일을 하면 하나가 엎어지더라도 하나는 입금이 되니까. (웃음)
<#10LOGO#> 다음에 하려고 염두에 둔 작품은 어떤 것들인가.
장항준 : 영화를 준비 중이다. 여고 동창생 셋이 바람피우는 남편 죽이는 내용인데 코미디로.
김은희 : 드라마를 할 예정인데 두 가지 이야기를 생각 중이다. 하나는 내 아이디어인데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무간도> 같은 스토리, 그런데 시대극은 제작비가 많이 든다고 해서. (웃음) 나머지 하나는 장항준 감독 아이디어인데 좀비가 나오는 사극이다.
<#10LOGO#> 그러고 보니 장항준 감독은 예능으로 복귀할 생각 없나.
김은희 : 예능 되게 좋아한다. 고정을 더 좋아한다. 돈 맛을 본 거지! (웃음)
장항준 : 수입이 되니까. 나에게 영화는 직업이고, 드라마는 도전이고, 예능은 돈벌이다. (웃음)
<#10LOGO#> 사실 열정 넘치고 진지한 감독과 작가는 많지만 장항준 감독처럼 예능인의 기질이 있는 캐릭터는 드문데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어땠는지도 좀 궁금했다.
김은희 : 나는 진짜로 오빠가 웃겨서 결혼했다. 이상형이 웃긴 사람, 김국진 씨였는데 오빠와의 결혼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너 정말 이상형을 만났구나!” (웃음) 그런데 그것도 오래 보니 좀 질렸다. 요즘 리액션을 안 해주니까 자꾸 ‘은희야, 은희야’ 하고 계속 부른다.
장항준 : 내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은희야, 은희야, 은희야, 은희야’다. 김은희 작가가 나한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하지 마’. (웃음)
<#10LOGO#> <라이터를 켜라> 등 코미디 영화를 주로 만들기도 했고 MBC <놀러와>나 KBS <야행성>으로 장항준 감독의 캐릭터를 알게 된 시청자들에게 <싸인>은 굉장히 의외의 작품이기도 했는데.
장항준 : 주변 사람들도 그랬다. 이번에 하는 드라마 뭐냐고 물어봐서 “국과수에서 시체 가지고 부검하는 거야”라고 하면 “야, 이번엔 시체로 웃기는 거야? 너 진짜 대단하다!”라는 반응이었는데 사실 나는 좀 반골 기질이 있어서 뭔가를 전복시키고 엄숙한 걸 흐트러뜨리는 데서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싸인>을 딱 끝낸 다음에, 예능에 나가서 인간이 얼마만큼 가벼울 수 있나 보여줘서 사람들이 “저 인간 도대체 뭐야?” 라고 느끼게 해 주는 게 인생의 큰 목표다. (웃음)
<#10LOGO#> 그렇다면 이 작품의 성공이 본인에겐 어떤 의미인가.
장항준 : 드라마를 많이 알았던 사람이라면 이렇게 리스크가 크고 실패할 확률이 많은 아이템을 기획하지는 않았을 거다. 안방 시청자들, 특히 주부들이 주 시청층인 환경에서 과연 시체가 등장하는 걸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할 것인가, 연쇄살인이니 뭐니 해서 계속 사람이 죽는 것도 문제였다. 경제 불황일 때는 어두운 이야기가 잘 안 되기도 하고. 하지만 한국 메디컬 드라마에선 의사들이 사랑을 하고 형사 드라마에선 형사들이 사랑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나. 만약 우리가 그런 걸 하려고 했다면 남들이 잘 하고 있는 걸 굳이 또 답습하고 따라가는 거니까 의미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싸인>이 다시 이런 장르물이 드라마에 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동안 방송국 연출자들도 밤에는 미드 보고 낮에는 “그런 건 안 된다”고 했는데, 남들이 하질 않았던 걸 했다는 데 좀 가치가 있는 것 같다.
<#10LOGO#> 혹시 시즌 2에 대한 욕심은 없나.
장항준 : 사실 법의학으로는 할 수 있는 얘기는 거의 다 한 것 같다.
김은희 : 그러니까 시즌 2로 가려면 국과수 내에서도 법과학부 쪽으로 가던가, 장르가 좀 달라져야겠지. 지훈이가 없으니까.
장항준 : 굳이 방법을 찾자면 <싸인>이 시작되기 전으로 돌아가 지훈이가 어떻게 법의관으로 성장했는가를 보여주는 프리퀄을 만들 수는 있겠지.
김은희 : 하지만 우리 말고 더 좋은 분이 많을 거다. (웃음)
<#10LOGO#>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논란이 될 만한 결말에 대해 “왜 그래야만 했느냐”고 한다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장항준 :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거니까 우리한테는 당연한 거였다. 대책 없는 해피엔딩이나 새드엔딩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진짜 영웅이, 세상에 걸맞지 않은 영웅이 온전하게 남으려면 그 때 그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가 남겨준 세상의 교훈을 갖고 우리가 앞으로, 그가 가졌던 갈등이나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자는 의미에서 윤지훈의 죽음이 필요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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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인터뷰. 이승한 fourteen@
10 아시아 인터뷰. 최지은 five@
10 아시아 사진. 이진혁 eleven@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즐거움의 공장 "10 아시아" (10.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장항준 : 굉장히 많이 준비하고 몰입하는 배우다. 정말 노력파다. 24시간을 윤지훈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으니까.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계속 문자로 피드백이 오는데, A4지로 치면 한 장을 빽빽하게 채울 만큼 장문의 내용이 하루에 몇 번씩 온다. 정말 이 사람은 재능이 훌륭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진짜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걸 느꼈다.
“드라마라는 게 어느 순간 우리 손을 떠나더니 살아서 움직이고 진화한다”
<#10LOGO#> 윤지훈과 각을 세우는 이명한(전광렬)도 초반에는 그냥 권력지향적인 인물로 보였지만 정병도 원장과의 스토리나 국과수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게 드러나면서 앞의 행동들까지 이해하게 되는 면이 있었다. 이 인물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
장항준 : 처음에 배우들에게 이렇게 비유를 했다. “이명한은 박정희, 윤지훈은 김대중이라고 보자”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박정희란 인물은 사실 매력적인 악인이다. 관동군 출신에 배신도 몇 차례씩 하는 추악한 과거가 있었지만 분명 나라를 발전시키겠다는 열정은 있었던 거 같다. 문제는 그걸 ‘나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모든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면서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 거다. 전광렬 씨에게도 “이명한은 나쁜 놈이다. 대신 이 나쁜 놈에게 이유를 심어주고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어보자”고 했다.
<#10LOGO#> 사실 그에게도 한 때 윤지훈처럼 순수하게 열정 넘치는 시절이 있지 않았나.
김은희 : 어떤 면에선 예전의 이명한이 지금 윤지훈의 모습이다. 국과수를 사랑하고 법의학을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은 같은데 이명한은 현실의 벽을 체감하고 변해간 거다.
장항준 : 극 초반 전광렬 씨에게 “가장 이명한을 닮은 사람은 윤지훈이다. 15년 전 이명한의 모습이 윤지훈이다” 라고 말했고 박신양 씨에게는 “극좌와 극우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다.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는 순간 극좌는 곧바로 극우로 바뀔 수 있으니까. 그래서 원래 윤지훈도 10회쯤에 변하는 걸로 설정되어 있었다. 정병도 원장의 죽음을 보면서 힘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명한과 싸우다가 이명한처럼 되는 거다. 그러면서 윤지훈과 고다경(김아중)이 대립하게 하려 했는데 이미 시청자들 사이에선 윤지훈이 거의 안중근 의사처럼 되어 있었다. 그런 사람을 변하게 만들면 우리는 이민 가야 하는 거다. (웃음) 누군가 ‘윤지훈은 지금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고 하더라. 자기 길만 딱 보고 달려가면서 ‘다 필요 없고 정의면 된다’는, 어떻게 보면 구닥다리 인물인데,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다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그런 면에 사람들이 열광한 것 같다.
김은희 : 드라마라는 게 그렇더라. 어느 순간 우리 손을 떠나더니 살아서 움직이고 스스로 진화한다.
<#10LOGO#> 영화였다면 내가 만들고자 했던 캐릭터를 사람들이 원하는 캐릭터로 바꾸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상업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린 건가.
장항준 : 그렇다.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드라마의 속성이라는 건 대중성에 절대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 재미들도 나름대로 느꼈다. 피드백이 팍팍팍 오니까, 한 주에 두 개씩 개봉 하는 게 장난이 아닌 거다. (웃음) 수요일에 개봉하면 목요일에 또 개봉하고, 다음 주에 또 개봉하는 게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고 신나면서 위태위태하기도 한 시간이었다.
<#10LOGO#> 극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도 관건이었을 것 같다. 16부에서 20부로 늘리면서 장항준 감독이 연출에서 빠져 대본 작업에 동참하게 되기도 했고.
장항준 : 써놓은 대본이 10회 정도까지였는데 연장이 결정되는 바람에 김은희 작가가 SOS를 쳤다. 우리 대본은 이야기의 틀을 만들고 감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는데 그걸 한 주에 2회씩 쓴다는 건 살인적인 스케줄이다. 게다가 이런 장르는 템포가 느려지면 끝이니까 아마 내가 안 갔으면 대본에서 사고가 났을 거다. 그리고 또 하나, 연출자는 잠을 못 잔다는 게 고역이었다. 현장에서 한 시간 반, 두 시간씩 밖에 잠을 못 자니까. 가장 큰 고문이다. 없던 것도 다 불겠더라. (웃음) 결국 연출에서 빠지고 들어와 사흘을 내리 잤다.
“여고 동창생 셋이 바람피우는 남편을 죽이는 코미디를 준비중”
“진짜 영웅이, 세상에 걸맞지 않은 영웅이 온전하게 남으려면 그 때 그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
<#10LOGO#> 하지만 오랫동안 기획해 온 작품의 연출에서 도중에 빠지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장항준 : <싸인>이 아이라고 치면 내가 아빠고 김은희 작가가 엄마다. 함께 산통 끝에 애를 낳은 건데, 그걸 놓는다는 게 참 안타까웠다. 그리고 끝까지 하면 오로지 장항준의 작품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명예욕 같은 것도 있었지만 결국은 내 판단이 맞았던 것 같다. 김형식 감독한테도 정말 고마운 게, <외과의사 봉달희> 같은 작품으로 이미 일가를 이룬 사람이 남이 하던 걸 중간에 받아서 한다는 거는 쉽지 않았을 거다.
김은희 : 그리고 가장 유쾌한 부검이 될 뻔 했던 신이 있는데, 원래 미군 사건이 다 끝나고 다경이 국과수로 복귀했을 때 지훈과 다경이 부검하는 시신을 장항준 감독으로 하자는 얘기를 했다. 10회를 마지막으로 연출에서 빠지니까 약간 상징적으로, 부검대 위에 오빠가 누워 있으면 다경이 사인을 읽는 거다. “40대 남자. 과로사...” (웃음)
<#10LOGO#> 연출을 하기 전과 지금은 드라마 감독들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겠다.
장항준 : 찍는 동안 친한 영화감독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떻게 좀, 할 만 해?” 묻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하지 마! 우리는 못해!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돼! 이건 드라마 판에서 10년 이상 조연출 한 사람들이 트레이닝 하고 트레이닝 하고 트레이닝 해서 할 수 있는 시스템이야. 꿈도 꾸지 마! 근처에도 올 생각 하지 마! 나 정도나 되니까 이 정도 하는 거야!” (웃음)
<#10LOGO#> 왠지 잠재적 라이벌을 견제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웃음) 함께 작업한 작가로서, 장항준 감독의 작가로서의 장점은 뭐라고 보나.
김은희 : 따뜻한 시선? 어떤 거든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가 있다. 실제적으로 보면 대사를 잘 쓰는 편이다. 구성은 나에 비해 좀 딸리는 거 같고. (웃음)
장항준 : 동의한다.
<#10LOGO#> 앞으로도 작가로서의 공동 작업이든, 아니면 연출과 작가로든 함께 작업할 생각이 있나.
장항준 : 기본적으로 나는 영화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계속 영화를 할 생각인데, 그 사이 드라마에 적합한 소재가 있으면 같이 구성을 하고 연출을 할 생각이다. 각자 다른 작품을 맡아 하다가 사이클이 한 번 어긋나면 만나기가 굉장히 어렵긴 한데 그게 어찌 됐든 ‘안전빵’이기도 하다. 둘이 일을 하면 하나가 엎어지더라도 하나는 입금이 되니까. (웃음)
<#10LOGO#> 다음에 하려고 염두에 둔 작품은 어떤 것들인가.
장항준 : 영화를 준비 중이다. 여고 동창생 셋이 바람피우는 남편 죽이는 내용인데 코미디로.
김은희 : 드라마를 할 예정인데 두 가지 이야기를 생각 중이다. 하나는 내 아이디어인데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무간도> 같은 스토리, 그런데 시대극은 제작비가 많이 든다고 해서. (웃음) 나머지 하나는 장항준 감독 아이디어인데 좀비가 나오는 사극이다.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자는 의미에서 윤지훈의 죽음이 필요했다”
김은희 : 예능 되게 좋아한다. 고정을 더 좋아한다. 돈 맛을 본 거지! (웃음)
장항준 : 수입이 되니까. 나에게 영화는 직업이고, 드라마는 도전이고, 예능은 돈벌이다. (웃음)
<#10LOGO#> 사실 열정 넘치고 진지한 감독과 작가는 많지만 장항준 감독처럼 예능인의 기질이 있는 캐릭터는 드문데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어땠는지도 좀 궁금했다.
김은희 : 나는 진짜로 오빠가 웃겨서 결혼했다. 이상형이 웃긴 사람, 김국진 씨였는데 오빠와의 결혼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너 정말 이상형을 만났구나!” (웃음) 그런데 그것도 오래 보니 좀 질렸다. 요즘 리액션을 안 해주니까 자꾸 ‘은희야, 은희야’ 하고 계속 부른다.
장항준 : 내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은희야, 은희야, 은희야, 은희야’다. 김은희 작가가 나한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하지 마’. (웃음)
<#10LOGO#> <라이터를 켜라> 등 코미디 영화를 주로 만들기도 했고 MBC <놀러와>나 KBS <야행성>으로 장항준 감독의 캐릭터를 알게 된 시청자들에게 <싸인>은 굉장히 의외의 작품이기도 했는데.
장항준 : 주변 사람들도 그랬다. 이번에 하는 드라마 뭐냐고 물어봐서 “국과수에서 시체 가지고 부검하는 거야”라고 하면 “야, 이번엔 시체로 웃기는 거야? 너 진짜 대단하다!”라는 반응이었는데 사실 나는 좀 반골 기질이 있어서 뭔가를 전복시키고 엄숙한 걸 흐트러뜨리는 데서 쾌감을 느낀다. 그래서 <싸인>을 딱 끝낸 다음에, 예능에 나가서 인간이 얼마만큼 가벼울 수 있나 보여줘서 사람들이 “저 인간 도대체 뭐야?” 라고 느끼게 해 주는 게 인생의 큰 목표다. (웃음)
<#10LOGO#> 그렇다면 이 작품의 성공이 본인에겐 어떤 의미인가.
장항준 : 드라마를 많이 알았던 사람이라면 이렇게 리스크가 크고 실패할 확률이 많은 아이템을 기획하지는 않았을 거다. 안방 시청자들, 특히 주부들이 주 시청층인 환경에서 과연 시체가 등장하는 걸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할 것인가, 연쇄살인이니 뭐니 해서 계속 사람이 죽는 것도 문제였다. 경제 불황일 때는 어두운 이야기가 잘 안 되기도 하고. 하지만 한국 메디컬 드라마에선 의사들이 사랑을 하고 형사 드라마에선 형사들이 사랑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지 않나. 만약 우리가 그런 걸 하려고 했다면 남들이 잘 하고 있는 걸 굳이 또 답습하고 따라가는 거니까 의미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싸인>이 다시 이런 장르물이 드라마에 등장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그동안 방송국 연출자들도 밤에는 미드 보고 낮에는 “그런 건 안 된다”고 했는데, 남들이 하질 않았던 걸 했다는 데 좀 가치가 있는 것 같다.
<#10LOGO#> 혹시 시즌 2에 대한 욕심은 없나.
장항준 : 사실 법의학으로는 할 수 있는 얘기는 거의 다 한 것 같다.
김은희 : 그러니까 시즌 2로 가려면 국과수 내에서도 법과학부 쪽으로 가던가, 장르가 좀 달라져야겠지. 지훈이가 없으니까.
장항준 : 굳이 방법을 찾자면 <싸인>이 시작되기 전으로 돌아가 지훈이가 어떻게 법의관으로 성장했는가를 보여주는 프리퀄을 만들 수는 있겠지.
김은희 : 하지만 우리 말고 더 좋은 분이 많을 거다. (웃음)
<#10LOGO#>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논란이 될 만한 결말에 대해 “왜 그래야만 했느냐”고 한다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장항준 :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거니까 우리한테는 당연한 거였다. 대책 없는 해피엔딩이나 새드엔딩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진짜 영웅이, 세상에 걸맞지 않은 영웅이 온전하게 남으려면 그 때 그 모습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가 남겨준 세상의 교훈을 갖고 우리가 앞으로, 그가 가졌던 갈등이나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자는 의미에서 윤지훈의 죽음이 필요했던 것 같다.
<10 아시아>와 사전협의 없이 본 기사의 무단 인용이나 도용,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이를 어길 시 민, 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0 아시아 글, 인터뷰. 이승한 fourteen@
10 아시아 인터뷰. 최지은 five@
10 아시아 사진. 이진혁 eleven@
10 아시아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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