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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이빨을 드러낸 인숙(염정아)과 공 회장(김영애)의 대화는 14회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다. 인숙에게 계급이 인격으로 치환되는 정가원의 수장인 공 회장은 존엄이라는 가치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존재다. 그래서 인숙은 “어머니한테 밟힌 존엄”을 요구하면서 “어머니가 잃어버리신 인간의 존엄” 또한 명확하게 말한다. 그러나 공 회장은 인숙과는 ‘인간’의 기준부터가 다른 사람이다. 그의 세계 안에서 인숙은 애초에 불순물에 불과하고, 그래서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아느냐”는 인숙의 분노에 “네 까짓 게 잃을 거나 있었”냐고 반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두 사람은 분명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서로 어떠한 소통도 하지 못 하고 있다. 본격적인 전쟁을 앞둔 둘의 대화는 14회의 극적 긴장감을 절정까지 끌어 올리는 동시에, 존재를 부정당한 여인이 벌이는 외로운 싸움의 조건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 절정의 대화는 동시에 이 순간의 쾌감을 위해 <로열 패밀리>가 희생한 요소들을 돌아보게 한다. 대단한 복선처럼 제시되었던 서순애(김혜옥)는 위기의 순간 너무도 간단하게 맨 정신으로 돌아왔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이십여 년 만에 만난 아들 지훈(지성)에게 “마리가 가장 힘들 것”이라며 인숙을 변명해주기 바쁘다. 인숙에 대한 믿음을 잃었던 지훈 또한 너무 급작스레 마음을 돌려 인숙의 편으로 돌아왔다. 지금의 <로열 패밀리>는 마치 잃어버린 존엄을 찾는 전쟁터 위에 인숙을 세우기 위해 더 풍성한 텍스트로 해석될 여지를 스스로 축소하는 것처럼 보인다. 속도의 쾌감과 극의 밀도를 함께 챙기던 초반부의 가능성을 다시 증명할 수 있는 기회도 이제 4회밖에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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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이승한 fourt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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