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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일일드라마는 무한회귀의 공간이다. 국화(구혜선)와 새벽(윤아)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은님(정은채)이 있고, 수많은 실장님과 본부장님이 있던 자리에는 재벌 3세인 세인(제이)이 있다. 여주인공과 대결할 ‘잘난’ 서브 여주인공의 영겁회귀 역시 주미(윤아정)를 통해 이뤄졌다. 요컨대 <우리집 여자들>은 통속적 플롯으로 기본 시청률을 확보하는 KBS 일일드라마의 문법에 충실한 작품이다. 여자는 캔디고, 돈 많은 남자는 싸가지가 없다. 은님에게 엄마나 다름없는 진숙(나영희)에게 세인의 고모부 성주(김병세)가 청혼을 하며 ‘우리는 한 가족’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재밌는 건, 당혹스러울 정도로 기시감이 드는 설정 안에서 의식적으로 이 문법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이 종종 포착된다는 것이다. 세인을 좋아하는 것에 대해 “왜 배경이 좋은 남자를 좋아하면, 다 그 사람 자체보다 배경에 끌렸다고 생각해?”라고 정색하고 말하는 건, 은님이 아닌 주미다. 이어 주미는 “편견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일일드라마 속 서브 여주인공에 대한 편견을 지워달라는 당부와도 같다. 회장의 손자지만 본부장은커녕 말단 직원으로 일해야 하는 세인의 위치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은 다른 관점에서의 출발이라기보다는 익숙함에 대한 의도적 변주에 가깝기에 그만큼 티가 난다. 하지만 그 노력만으로도 은님과 세인의 비교적 수평적인 관계는 ‘나에게 이런 여자 처음이야’의 클리셰를 피하고, 평범한 중산층집 딸인 주미도 악녀가 아닌 다양한 망설임을 안에 품은 다층적 캐릭터가 됐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지금까지의 <우리집 여자들>이 웰메이드까지는 아니더라도 짜증 내지 않고 볼 수 있는 드라마였다면 그 때문이다. 어쩌면 빤한데다 막장인 드라마들의 창궐을 막을 수 있는 건 천재나 대가의 몇몇 작품이 아닌, 이러한 소소한 변화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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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아시아 글. 위근우 기자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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